▶ '산악인' 엄홍길, 해군 UDT 모집 보고 "내가 갈 곳"…ⓛ편
엄홍길은 기억의 편린을 꺼냈다. 14좌 완등에 성공하기까지 그를 좌절케 한 고봉은 여럿 있었다. 그 가운데 안나푸르나(8,091m)는 가장 한 많은 봉우리다. 1997년 세 번째 도전에서 혈육 같은 셰르파 나티가 크레바스에 빠져 목숨을 잃었다. 1998년에는 설사 면에서 발목이 180도 돌아가는 큰 부상을 하기도 했다.
◆ '한 많은 안나푸르나' 발목 180도 돌아간 부상 딛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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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목 부상 상황을 설명하고 있는 엄홍길. |
7천m까지 올라갔는데 발 앞부분이 뒤로 돌아갔죠. 셰르파가 보고 놀라더라고요. 아프면서도 기가 막혔죠.(웃음) 뼈가 분리돼 살만 붙어 있었지, 더 이상 다리를 쓸 수 없었어요. '아, 죽었구나…' 싶었죠. 하산해야 하는데 빙벽을 두 발로 가도 위험하잖아요? 갑갑하더라고요.
- 그 과정에서 살아나신 과정도 놀랍네요.
주변의 대나무를 이용해 부목을 댔죠. 한 발로 내려오기 시작했어요. 너무 힘들어서 무릎, 팔로 기어갔어요. 6천m까지 내려와 하룻밤을 잤는데 새벽에 어찌나 아프던지, 진통제를 먹고도 고통스러웠어요. 결국 2박 3일 만에 4천 5백m까지 내려와 헬기에 구조됐죠.
이후 한국에서 수술을 받았다. 담당 의사는 산은 물론이고, 뛰는 것도 무리라고 말했다. 3개월 동안 깁스를 했고 이후 물리치료와 재활치료를 받았다. 더 이상 고산 등반은 불가능으로 여겨졌다.
- 반년 만에 오뚝이처럼 일어나신 원동력이 무엇입니까.
낙담을 했지만, 재활을 하면서 목표에 대한 의지가 더 생겼어요. 집 뒷산 도봉산을 오르내리면서 몸을 되찾았죠. 그리고 이듬해 봄, 10개월 만에 다시 등반에 나섰어요.(웃음)
1999년 봄. 4전5기만에 안나푸르나를 정복했다.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쏟아졌다. 기쁘면서도 지난 10년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서러운 감정도 복받쳤다. '안나푸르나 신이시여, 저를 이렇게 받아 주실 거면서 왜 모진 시련을 주셨나요….' 그렇게 외쳤다. 그런데 끝은 아니었다. 하산 도중 후배 지현옥(당시 40세·여)과 셰르파 1명을 잃었다. 마지막 캠프에 내려선 지 몇 시간 후에 알게 됐다. 엄홍길의 눈에서 피눈물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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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 이상 고산 등반이 어려울 것이라는 의사의 말에도 10개월 만에 엄홍길은 오뚝이처럼 일어섰다. |
캉첸중가도 세 번의 도전 끝에 성공을 맛봤다. 1997년, 1999년 두 번의 도전에서 후배 대원과 취재기자가 목숨을 잃었다. 2000년 세 번째 도전에서는 친동생처럼 여긴 다와 셰르파가 낙빙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 악전고투 끝에 정상을 향해 걸음을 멈추지 않았고, 결국 캉첸중가 신에게도 부름을 받았다.
- 산악인들에게 등반 도중 동료를 잃는 것은 어떠한 의미입니까.
국가, 언어, 문화를 넘어서 생사를 함께하는 혈육 이상의 존재잖아요. 그런 친구들이 등반 도중 목숨을 잃는다는 것이 얼마나 가슴 아프겠어요? 매 순간, 위험천만한 상황을 넘기면서 뜻을 함께하는 동료들인데….
2000년 여름 K2 등정을 끝으로 14좌 완등의 대업을 이뤘다. 생사의 경계선을 수없이 넘나들었지만 한국인 최초의 14좌 완등은 더할 나위 없이 값졌다. 그러나 그의 꿈은 멈추지 않았다. 캉첸중가, 로체샤르 위성봉마저 올라 세계 최초의 8천m 16좌 완등의 야망을 꿈꿨다.
- 모진 시련을 겪고도 도전을 멈출 수 없었던 근본적인 이유는.
산악협회에서도 논란이 되었던 내용이지만, 사실 히말라야는 16좌가 맞습니다. 캉첸중가와 로체 위성봉이 독립 봉으로 구분돼 애매했죠.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었어요. 2004년 알룽캉(8,505m)은 첫 등반에서 끝냈죠.(웃음)
마지막 고봉인 로체샤르는 엄홍길을 쉽게 받아주지 않았다. 2001년, 2003년, 2006년 세 차례 실패를 거쳐 2007년 네 번째 도전만에 성공했다. 그 과정에서도 2003년 정상을 150m 놔두고 후배 대원 2명을 눈사태로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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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진 시련과 고난을 이겨 냈기에 지금의 자리에 설 수 있었다는 엄홍길은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
'등반 인생의 마지막 도전'이라는 각오로 떠난 2007년 로체샤르 원정은 그야말로 피가 마르는 도전이었다. 초반 제2캠프로 향하던 중 셰르파가 500m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런데 하늘이 도왔는지 모두가 죽음을 예상할 무렵, 가벼운 무릎 탈골로 목숨을 건졌다. 후배 두 명과 어렵사리 정상에 올라섰다. 모든 것이 잘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후배 한 명이 설맹으로 아무 것도 보지 못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상 등정보다 후배를 안전하게 하산시키는 것이 더 중요했다.
- 혼자 내려가기도 힘든 상황이었을 텐데요.
후배를 로프에 묶은 채 설릉을 어렵게 통과하고 설벽 구간에서는 후배를 먼저 내려 보낸 다음 뒤이어 내려서기를 반복했어요. 등반 시작 하루 만에 마지막 캠프로 내려왔는데 정말 툭 건드리면 쓰러질 만큼 지쳤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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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캉첸중가 등정에 성공하고 귀국하는 엄홍길 사단. |
운명은 정해졌나 봐요.(웃음) 캉첸중가에서는 다와 셰르파가 컨디션이 좋지 않아 보여서 뒤따라오라 했는데 느닷없이 앞장서다가 크레바스에 빠졌죠. 로체샤르에서 사고를 당한 후배 박주훈도 저를 앞지르더니 눈사태에 휩쓸렸고요. 두 후배를 생각하면 눈물이 나요. 로체샤르 정상에 섰을 때 '고맙습니다. 꼭 갚겠습니다'라고 외쳤어요.
그렇게 2007년을 끝으로 엄홍길의 등반 도전은 끝났다. 세계 최초의 16좌를 정복한 산악인이라는 타이틀을 벗 삼아 제2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2008년 5월, 엄홍길 휴먼재단을 발족해 그의 꿈을 함께하다 사고를 당한 셰르파와 후배 대원들의 유족을 돕는 일에 힘쓰고 있다.
초등학교 교사 기공식을 가진 네팔의 오지 마을 팡보체는 1986년 에베레스트 남서벽 등반 중 사고를 당한 술링 도르지 셰르파의 고향이다. 술링의 아내에게 적은 돈이지만 생활비를 보탰고, 술링이 자신의 고향에 학교가 없는 데 가슴 아파한 것을 기억해 그의 꿈을 23년 만에 실현해 줬다.
◆ 오은선 논란? "외부도 아니고, 집안싸움에 가슴 아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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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엄홍길 휴먼재단 내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엄홍길. |
등산 인구가 1천만 명이 넘어요. 아웃도어 산업도 급성장했죠. 장비, 등반 식량, 통신 등 비교할 수 없이 좋아졌죠. 예를 들어, 날씨도 예전에는 하늘만 보고 감을 잡았어요.(웃음) 지금은 기상청의 통계 자료를 보고, 전략을 짜죠. 실패 확률이 적어졌어요.
-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 대장님만큼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데요.
여러 가지로 풍부해졌죠. 할 것들도 많아졌고요. 힘든 것, 위험한 것을 피하려고 하죠. 본인이 미쳐서 해야죠.(웃음) 등반을 누가 목숨 걸고 하려고 하겠어요. 요즘 젊은 사람들은 근성이 좀 약한 편이죠. 악착같은 면이 없는 것은 아쉬워요.
- 그러한 가운데 '오은선 논란'은 선배로서 아쉬움이 크셨죠?
우선 외부에서 이야기한 것도 아니고, 결과물을 놓고 집안 식구들끼리 다툼을 했다는 것이 가슴이 아팠어요. 누군가 함께 등반한 것도 아닌 상황에서 …. 그것을 포장해 줘도 모자를 텐데, 깎아내리니까 더욱 안타까웠던 거죠.
- 후배 산악인들에게 하고 말이 있으시다면.
산을 진정으로 사랑했으면 좋겠어요. 산의 순리에 따라서, 항상 겸손하고 겸허한 마음을 가져야죠. 그런 마음이 조금이라도 흐트러지면 산은 용납하지 않아요. 저도 평정심을 잃지 않으려고 했지만 어느 순간 무리수를 두곤 했어요. 그러면 분명 사고가 났죠. 초심을 잃지 말고, 산을 사랑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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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을 사랑하라'는 그의 말처럼, 엄홍길은 앞으로도 순리에 맞게 도전하는 삶을 살 것이다. |
어느 때보다 진정성 있는 전설의 아우라가 느껴진 엄홍길. 휴먼재단은 곧 인생의 17번째 히말라야 등정으로 해석하기에 충분했다. 오랜 시련을 견뎌 낸 지리산 고사목처럼, 또는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는 너른 한라산의 마음을 갖고 승승장구하는 또 다른 엄홍길의 삶을 그려 본다.
"히말라야를 통해 얻은 것이 참 많습니다. 산은 제 삶에서 위대한 스승이자 신입니다. 은혜를 갚고 싶습니다. 앞으로 더불어 사는 사회를 이끌고자, 가까운 곳과 먼 곳을 오가며 오지의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 줄 수 있는 밑거름이 되겠습니다. 스포츠서울닷컴 독자 여러분들도 매사에 긍정적인 사고를 갖고 자신의 신념에 따라 위대한 도전을 하시기 바랍니다. 분명히 꿈을 이룰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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